에스토니아(에스토니아어: Eesti 에스티, 문화어: 에스또니야)는 북유럽에 위치하며 북쪽과 서쪽은 발트 해, 동쪽은 러시아, 남쪽은 라트비아와 닿아 있다. 수도는 탈린이다. 정식 명칭은 에스토니아 공화국(에스토니아어: Eesti Vabariik 에스티 바바리크)이다. 1940년 소련에 편입되었다가, 1991년 노래 혁명 후 독립을 인정받았으나 독립국가연합(CIS)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발트 3국의 최북부에 있으며, 빙하작용을 받은 토지는 낮고 평평하다. 기후는 습윤하며, 삼림·습지·목초지는 매우 넓다. 민족구성은 65%가 에스토니아인이다. 공용어로는 에스토니아어를 사용한다. 의회는 단원제로 직접선거로 선출되며 임기는 5년이다. 1995년 경제성장률은 3%로 소련 15개 공화국 중 가장 안정적이며 러시아와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발트해를 통해서 핀란드, 스웨덴에 국경을 접한다. 핀란드에서는 에스토니아를 "Viro" 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1] 역사 에스토니아는 상고적부터 핀-우르그어족에 속하는 에스토니아인들의 땅이었다. 독일의 프라테스 밀리치아이 크리스티(Fratres militiae Christi)에 의해 1227년 정복되며 기독교화되었다. 이후 덴마크, 스웨덴, 폴란드, 러시아인들에 의해 지배를 받았다. 에스토니아의 부르주아와 중산층은 1918년과 1948년 이전까지 발트 게르만인이었으나 이들은 대부분 두 차례 세계대전 이후 에스토니아를 떠났다. 10월 혁명으로 제정 러시아가 무너지고 난 뒤 1918년 2월 24일 에스토니아는 독립을 얻었으나 1934년에 초대 국무총리였던 콘스탄틴 패츠(Konstantin Päts)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1939년 8월 23일 소련은 나치 독일[2]과 리벤트로프-몰로토프 밀약을 맺어 중앙유럽을 독일과 소련이 각각 분할하기로 하는 비밀 의정서를 만들었다.[2][3] 이 의정서에서 에스토니아는 소련의 영향권에 두기로 인정받았다.[3] 소련이 발트 3국을 처음으로 점령한 것은 1940년 6월 중순의 일이었는데, 소련의 내무인민위원회 요원은 에스토니아의 국경 초소를 급습하였고,[4]:20[5] 에스토니아군을 몰아낸 뒤 소비에트 간부단으로 대신하였다.[4]:20[6] 의회와 여타 정부 부처의 공직자를 뽑는 선거에서는 명부에 후보자가 한 명씩밖에 없었는데, 독재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명분으로 선거가 치러져 선거의 공식 결과에서 친(親)소련 후보가 92.8%의 표를 얻었다.[4]:21 그렇게 구성된 의회는 곧 소비에트 연방에 가입할 것을 요청하였으며, 소련의 승인을 얻어 에스토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소련에 병합되었다.[4]:21 국제 사회는 소련의 발트 3국 병합을 불법으로 보고 비난하였다.[7][8]:117 1991년 8월 20일 노래혁명과 소련의 붕괴로 독립을 되찾았다. 8월 20일은 에스토니아의 국경일이다. 에스토니아의 마지막 소련 군대가 떠난 1994년 8월 31일 이후 에스토니아는 서유럽과의 관계 정상화에 노력을 기울여 2004년 3월 29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2004년 5월 1일 유럽 연합(EU)에 가입했다. 에스토니아는 세계에서 최초로 휴대폰으로 투표를 치르게 되는 방식을 2012년에 도입하였다.[9] 2011년 1월 1일부터 유로를 공식화폐로 도입했다.[10][11] 지리 에스토니아는 국토 전체가 빙하침식에 의한 평야 지대이다. 러시아와의 경계에 추드스코예 호가 있다. 발트해와 핀란드 만을 끼고 있기도 하다. 평균 해발고도가 50m에 불과하고 가장 높은 지대라고 해도 318m에 지나지 않는다. 유혈암(오일셰일)과 석회석 그리고 전체 국토의 7%에 해당하는 삼림이 국가 경제의 주 원동력이 되고 있다. 에스토니아에는 1,400여 개나 되는 작고 큰 호수가 있다. 대부분은 작지만 가장 큰 호수는 3,555㎢에 이르는 페이푸스 호(Lake Peipus)이다. 강 줄기도 많아서 162km의 지류인 보한두 강(Võhandu), 파르누 강(Pärnu) 등이 있다. 에스토니아 인근의 도서 지역은 1,500여 개 이상인 것으로 추측되며 가장 큰 두 섬은 사레마(Saaremaa)와 히우마(Hiiumaa)이다. 행정구역 이 부분의 본문은 에스토니아의 주입니다. 에스토니아는 15개 주로 구성되어 있다. 주 정부의 최고 지도자인 주지사는 중앙 정부가 임명하며 임기는 5년이다. 각 주의 지방 자치체는 시(linn)와 마을(vald)로 나뉜다. 경제 유럽 연합의 회원국으로서 경제적으로 발달했으며, 소련에서 독립한 국가로는 가장 성장이 빠르고 경제수준이 높은 나라이다. 이러한 급속 성장으로 에스토니아는 발틱의 호랑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2011년 1월 1일부터 유로화를 도입했다. 유럽 연합의 통계청인 Eurostat에 따르면 에스토니아는 2010년 유럽 연합 회원국 중 가장 낮은 6.7%의 채무율을 자랑했다고 한다. [12] 최근 세계의 매체는 에스토니아를 북유럽 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경제적 영향력, 정치, 문화가 다른 발틱 국가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13] 최근 20년 에스토니아의 성장은 핀란드, 스웨덴 그리고 독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 3개의 국가가 에스토니아의 주 무역대상이다. 에스토니아 개혁당은 에스토니아의 1인당 국내총생산을 2022년까지 유럽 연합 최고 수준까지 상승시키겠다고 주장하였다. 2007년에 시작된 경제 불황으로 에스토니아의 GDP는 2008년 2분기 1.4% 감소를 시작으로, 3분기에는 3% 이상, 4분기에는 9% 이상 감소하였다. 이에 따라 에스토니아 정부는 예산 보충안을 세웠고 이는 에스토니아 의회인 리기코구에 의해 통과되었다. 이것을 시작으로 2008년 지출은 61억 크론에서 32억 크론으로 감소하였다.[14] 2010년, 경제가 안정되고 강력한 수출로 성장이 다시 시작되었다. 2010년 4분기에는 에스토니아 공업 생산량이 전년대비 23% 증가하였다. [15] Eurostat에 따르면 2008년 에스토니아 일인당 국내총생산이 유럽 평균의 67%에 미친다고 하였다. 2011년 3월 에스토니아의 1인당 평균 월 수입은 843유로라고 발표하였다. (2011년 기준 150만원 가량) [16] 하지만 1인당 국내총생산은 지역마다 다르다. 국내 총생산의 50%를 수도 탈린에서 생산해낸다고 한다. 2008년 기준 에스토니아의 일인당 총생산은 1만 5천 불 가량이지만, 수도 탈린은 다른 지역보다 172% 높은 수치를 나타내었다. 이는 유럽 연합 평균 일인당 총생산의 115% 높은 수치라고 한다. 실업률은 11.7%로 유럽 연합 평균보다 높으며, 실제 GDP 성장률인 8%보다 높은 수치이다. [17] 발전 시작 1929년까지 에스토니아의 화폐인 크론이 에스토니아 은행에서 발행되었다. 하지만 소련에 합병된 후 발행이 금지되었고, 서유럽에 초점을 두었던 무역도 금지 되었다. 1940년대에 있었던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농업으로 어느 정도 성장을 하는 국가였지만, 1940년 소련의 합병과 나치의 만행으로 경제적으로 피폐해졌다. 전쟁이 끝나고 독립을 한 1991년부터 에스토니아는 자국을 동구권과 서유럽을 이어주는 문으로 활용하였고, 서유럽의 경제 체제를 본따 경제 개혁을 시작하였다. 1994년 밀턴 프리드먼의 이론에 기초를 두어 에스토니아는 일률 과세를 도입하였고, 세금을 26%로 동결하였다. 그리고 2005년 1월 세금을 24%로, 2006년 1월 23%로, 마지막으로 2008년 1월 21%로 감축하였다. 에스토니아 정부는 2004년 말 자국의 유로화 디자인을 완성했고, 2011년 1월 1일 도입 하였다.[18] 1999년 에스토니아는 1991년 독립 이후 최대의 경제위기를 맞게되는데, 이는 1998년에 있었던 러시아 금융위기가 이유가 되었다. 이후 1999년 11월 유럽 연합의 도움으로 세계 무역기구에 가입하였고, 2002년 유럽 연합의 동의를 받아 2004년 가입하게 된다. 2010년 OECD가입으로 한번 더 경제대국이라는 것을 알리게 되었다.[19] 자원, 환경, 산업 에스토니아가 자원이 부족한 국가로 알려져있지만, 곳곳에서 소규모의 자원이 발견되어 사용하고 있다. 유혈암과 석회석이 주를 이루며 이 국가의 48%를 덮고 있는 숲도 이에 포함된다. [20] 유혈암과 석회석 외에도 에스토니아는 인회암, 우라늄과 화강암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채굴하지 않고 있고, 그나마 채굴 하고 있는 곳도 소규모에 불과하다.[21] 최근에, 에스토니아 여론은 원자력 발전소를 짓자는 의견이 제시되었는데, 이는 동쪽 나르바에 있는 발전소들이 노후화 되어 전기 공급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2016년까지 재건되지 않으면 원자력 발전소를 짓는다고 한다. [22] 식품 제조업, 건설업 그리고 전기 산업이 에스토니아의 산업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2007년 조사에 따르면 이 산업에 종사하는 종사자 수가 8만 여명이고 이는 에스토니아 노동 인구 중 12%를 차지 한다고 한다. [23] 또 이 나라의 주요 산업은 제조업과 화학 산업인데, 이다비루 주와 탈린에 많이 있다고 한다. 에스토니아는 첨단 산업의 중심지라고도 불리며 정보 산업으로 크게 발전한 국가이다. 이는 90년대 중반, 정부에서 실시한 트리그리후페 프로젝트 때문이다. 덕분에 에스토니아는 전 세계 국가 중 인터넷 속도 1위(2010년 기준)를 차지했으며, 수도 탈린 중심지의 건물은 거의 대부분 와이파이 설비를 갖추고 있다고 한다. 또한 스카이프가 바로 에스토니아에서 만들어졌는데, 창설자가 에스토니아인이고 본사가 탈린에 있다고 한다. [24] 무역 에스토니아와 각 국가간의 무역 비율 에스토니아[25] 수출 수입 스웨덴 스웨덴 15.9% 10.2% 핀란드 핀란드 14.5% 14.4% 러시아 러시아 12.1% 6.8% 라트비아 라트비아 8.7% 9.6% 리투아니아 리투아니아 5.4% 8.6% 독일 독일 4.5% 10.6% 기후 냉량습윤한 대륙성기후이며, 평균기온은 1월 -5.9℃, 7월 16.8℃이고, 연강수량은 600~750㎜이다. 통계 세계 2차 대전 이전, 에스토니아를 차지하는 에스토니아인은 전체 인구의 88%를 차지했다. 1934년 통계에 따르면 12%를 차지하는 소수 인에는, 러시아인, 독일인, 스웨덴인, 라트비아인, 유대인, 폴란드인, 핀란드인이 주를 차지하였다. 소련 아래에 있던 1945년 부터 1989년까지, 에스토니아를 차지하는 에스토니아인은 전체 인구 61%대로 떨어졌고, 러시아인, 벨라루스인 그리고 우크라이나인의 대거 유입으로 도시화가 시작되었다. 1989년까지 에스토니아의 소수인들은 에스토니아 전체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하지만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인의 전출로 인해 지금까지도 급격한 인구 감소를 겪고있다, 현재 주민은 에스토니아인이 65.3%, 러시아인이 28.1%, 우크라이나인이 2.5%, 벨라루스인이 1.5%, 핀란드인이 1%, 기타 1.6%가 있다.(1998년) 구 소련 해체후에 발트 3국 내에서 법적으로 외국인이 되어버린 러시아계 주민의 문제가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만큼은 아니나 사회적 갈등요소이다. 2007년에는 소련군 동상 철수로 인해 에스토니아에 거주하던 러시아인들에 의한 폭동이 일어났다.[26] 여성 1인당 합계출산율은 2005년 현재 1.5명으로 [1], 출산력 수준은 차차 회복 중에 있다. 그러나 2005년 현재 천 명당 출산율은 10.66명, 천 명당 사망율은 12.86명이어서 인구의 감소세는 여전하다. 에스토니아의 인구 추이 도시화 수도인 탈린이 에스토니아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에스토니아 북해안에 자리 잡았으며, 핀란드 만을 사이로 핀란드와 마주 하고 있다. 33개의 도시와 군-도시 급 마을이 있는데, 이를 합쳐 총 47개의 린"Linn"이 있는데, 이는 한국어로 도시와 마을을 의미한다. 에스토니아 전체 인구 70%가 바로 이 린에 거주한다. 도시 소재 주 인구 탈린 하리우 주 393,222 타르투 타르투 주 97,600 나르바 이다비루 주 58,663 패르누 패르누 주 39,728 코흐틀라얘르베 이다비루 주 37,201 마르두 하리우 주 17,524 빌리안디 빌리안디 주 17,473 라크베레 래네비루 주 15,264 실라매에 이다비루 주 14,252 쿠레사레 사레 주 13,166 버루 버루 주 12,667 발가 발가 주 12,261 여흐비 이다비루 주 10,775 합살루 래네 주 10,251 케일라 하리우 주 9,763 파이데 얘르바 주 8,228 타파 래네비루 주 5,896 펄바 펄바 주 5,767 키비올리 이다비루 주 5,634 엘바 타르투 주 5,607 언어 에스토니아에는 공용어인 에스토니아어가 있고, 사용인구는 1백 5만여명이다. 또한 지역 언어가 4개 있는데 총 사용인구는 10만 여명 정도 된다. 지역 언어로는 가장 많이 쓰이는 버로어(7만 여명이 사용) 그리고 세투어, 물기어, 타르투어가 있다. 에스토니아어는 핀란드어와 같은 우랄어족에 속한다. 핀란드어와 에스토니아어는 인도유럽어족인 스웨덴어, 라트비아어, 러시아어와는 지리적으로는 이웃이지만 언어의 기원상 관련이 없다. 에스토니아의 러시아어의 사용인구는 소련의 해체부터 지금까지도 에스토니아어 다음으로 많이 쓰이며 교육과정에서도 러시아어는 널리 가르치고 있다. 에스토니아 인구의 30%는 러시아어가 모국어이며[27], 실제로 동부에 있는 나르바의 주민과 노동자는 에스토니아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하지만, 에스토니아에 거주하는 외국인중 64.1%가 에스토니아어를 사용한다고 한다.[28] 러시아어 다음으로 많이 사용되는 언어는 스웨덴어로, 22개의 작은 마을에서 스웨덴어와 에스토니아어가 혼용된다고 한다.[29] 나머지 주를 이루는 외국어는 핀란드어, 영어, 우크라이나어, 독일어이다. 종교 에스토니아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비종교적인 국가로 전체 인구의 75.7%가 종교를 믿지 않는다고 한다. 2005년 기준 전체 인구중 16%만이 신의 존재를 믿을 정도로 유럽에서 가장 비종교적인 국가이다. 2000년 통계에 따르면 루터파 개신교가 15만 2천여명, 러시아 정교회가 14만 3천여명, 로마 가톨릭교회가 5천여명, 여호와의 증인을 믿는 사람이 4천 3백여명이었다.[30] 그 중에서도 러시아 정교회를 믿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러시아인들이라고 한다.[31] 문화 에스토니아의 문화적 수준은 매우 높다. 이 나라의 문맹율은 0.2% 미만이다. 음악 매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참가하며 자국의 음악 축제인 Laulupidu를 연다. 대표적인 가수로는 레나 쿠르마, 컬리, 오트 레플란드, 비르기트 어이게멜 등이 있다. 외교 대한민국과의 관계 1991년 소련 붕괴 및 사회주의 연방 탈퇴 이후 대한민국과 1991년 수교하였다. 러시아와의 관계 에스토니아는 러시아와의 역사적인 관계로 사이가 그리 좋지 않은 편이나, 어느 정도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에스토니아에 거주하는 러시아인문제와 러시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에 편입된 일부 영토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어서 러시아와 갈등을 빚고 있다. 그 외의 나라와의 관계 에스토니아는 독립 국가 연합에 불참여함으로써 서방 국가와 강화하기 위하여, 북대서양 조약 기구와 유럽 연합에 각각 가입하였다. 에스토니아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국가로 승인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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