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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

2015-6-7 23:41| view publisher: amanda| views: 4360| wiki(57883.com) 0 : 0

description: 알바니아 공화국(알바니아共和國, 알바니아어: Republika e Shqipërisë 레푸블리카 에 슈치퍼리스), 즉 알바니아(알바니아어: Shqipëria 슈치퍼리아)는 남동부 유럽 발칸 반도에 있는 나라로, 수도는 티라나, 공 ...
알바니아 공화국(알바니아共和國, 알바니아어: Republika e Shqipërisë 레푸블리카 에 슈치퍼리스), 즉 알바니아(알바니아어: Shqipëria 슈치퍼리아)는 남동부 유럽 발칸 반도에 있는 나라로, 수도는 티라나, 공용어는 알바니아어, 국민의 대다수는 알바니아인이다.

개요

국토 북서쪽은 몬테네그로, 북동쪽은 코소보, 동쪽은 마케도니아 공화국, 남쪽은 그리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서쪽에는 아드리아 해, 남서쪽에는 이오니아 해가 있는데, 두 바다를 잇는 오트란토 해협 사이로 이탈리아와는 72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수도는 티라나이다. 알바니아인들은 "검은 독수리의 나라"라고 자칭한다. 알바니아는 유럽에서 국민의 다수가 이슬람교를 믿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이다.

알바니아는 의회 민주주의 국가로, 과도 경제 단계에 있는 나라이다. 자유 시장 개혁으로 특히 에너지와 교통 기반 시설 투자에 외자 유치를 하고 있다.[1][2][3]

알바니아는 국제 연합, 북대서양 조약기구, 유럽 안보 협력 기구, 유럽 평의회, 세계 무역 기구, 이슬람 회의 기구에 가입했으며, 지중해 연합의 창립 회원국이다. 이 나라는 2003년 1월 이래 유럽 연합 잠재 후보국이 되었으며, 2009년 4월 28일에 공식적으로 유럽 연합 가입을 신청했다.[4]
역사
알바니아의 전 국왕이었던 조그 1세
고대

오늘날 알바니아인의 조상인 일리리아인이 기원전 2000년 경 발칸 반도 서쪽(일리리아)에 정착하기 시작했는데, 그 주위로는 호전적 성향이 짙은 나라들이 자리를 잡았다. 기원전 7세기경 그리스인들이 들어와 자치 식민지를 건설했고, BC 4 세기경에는 고유 부족 국가를 이룬 일리리아인과 평화적인 무역을 전개해 나갔다. 그러다가 그리스가 알바니아 남부를 점령했는데 그리스는 오늘날까지 이에 대한 영토권을 주장하고 있다.

슈코드라(Shkodra; 현재 알바니아 북부)를 중심으로 발전해 가던 일리리아 왕국을 넘보기 시작하던 로마 제국은 BC 228년에는 군함 200척을 앞세워 침략했다. 로마가 이 곳을 정복하기 전 일리리아는 한 때 도나우 강 북부에까지 그 세력을 떨쳤으나, BC 167년 발칸 전역이 로마의 지배하여 들어가면서 로마 제국에 편입되었다. AD 5세기에서 6세기 사이에 로마가 쇠퇴하자 고트족, 훈족, 슬라브족의 침략이 잇따랐다. 11세기에는 비잔티움 제국, 제2차 불가리아 제국, 노르만족이 일리리아 북부 지역에 대한 주도권을 두고 서로 다투기도 했다.
오스만제국

1272년 프랑스 출신의 앙주의 샤를이 알바니아에 왕국을 세웠는데 오래가지는 못했다.

세르비아, 오스만 제국, 베네치아 공화국 등도 알바니아를 거쳐갔는데, 오스만 제국이 1479년 마침내 이 곳을 손에 넣었고, 그 이후 1912년까지 터키의 지배하에 들게 된다. 외세의 침략을 겪으면서 알바니아는 유럽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몰락하게 된다. 1878년 프리센(Prizen; 현재의 코소보)에서 알바니아 연맹이 창설되었으며, 자치권을 얻기 위한 분투를 계속하였다. 1881년 터키 군대는 독립 시도를 무참히 짓밟았다.
독립

1912년 11월 28일,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이 나라는 제1차 세계 대전 때 중립을 선언하였지만 동맹국에 점령을 당하여 한 때 나라가 분단되기도 했다.

1928년부터 조그 1세가 공화정에서 군주제를 선언하였고, 그는 '조그 국왕'으로 등극된다. 그의 권력은 한마디로 전제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1939년, 이탈리아의 점령으로 폐위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독일의 침공을 받자 1941년 유고슬라비아의 원조로 결성된 공산당이 파르티잔 활동을 전개, 1944년 해방 후 호자를 수반으로 하는 좌익임시정부가 수립되어 1946년 군주제는 폐지되고, 인민공화국이 성립되었다.[5]

1961년에 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가 알바니아 지도층의 스탈린주의를 비판한 후 소련권에서 이탈, 반미반소 친중노선으로 채택했으며, 스탈린주의와 대동구권 고립주의 노선을 견지해 유럽의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가장 고립된 나라였다. 1976년 사회주의 인민공화국 신헌법을 제정·공포해 '자력갱생의 원칙'을 강조하였고, 마오쩌둥 사후에는 중국과의 관계도 나빠져 고립주의 노선이 더욱 강화되었다.[5]
최근 상황

1991년에 민주화를 통해 대외개방이 이루어졌다. 1997년에는 군주제 부활에 관한 국민 투표가 있었으나, 국민 다수가 공화정을 선호해 부결되었다. 2009년 4월 28일에 알바니아는 유럽 연합 가입을 신청했다.[6] 2011년 1월 22일에 반정부시위가 일어나면서 3명이 사망하기도 했다.[7][8]
지리

알바니아의 전체 면적은 28,748 ㎢이다. 해안선은 362km이며, 서쪽으로 이오니아 해와 아드리아 해를 마주하고 있다. 국경선의 북쪽은 몬테네그로와 코소보에 접하고, 동쪽으로는 마케도니아와 접하며, 남쪽은 그리스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국토의 70%가 산악지대이며, 알바니아의 북쪽에는 높이 2,590m의 노스알바니아알프스가 솟아 있다. 참나무, 느릅나무, 침엽수 등이 울창하게 자라는 중앙 고지는 서쪽으로 습한 해안 평야까지 펼쳐져 있다. 동쪽으로는 중앙 고지가 마케도니아와의 국경 산악 지대로 이어져 있다. 알바니아에서 가장 높은 산은 해발 2,764m인 코랍산인데, 그 산줄기는 남쪽의 산악 지대로 이어져 있고 아드리아 해로 뻗어 내려가 알바니아(또는 이로니아) 리비레아라고 불리는 휴양지 주변에는 절벽이 있다.

해안 지역은 여름에는 따뜻하고 건조하며, 겨울에는 온화하고 습기가 많은 지중해성 기후이다. 수도 티라나의 7월 평균 기온은 약 23.9℃이다. 전국적으로는 연간 강수량은 1,000mm~1,500mm 정도이며, 대부분이 동절기에 내린다. 그러나, 강수량의 분포는 고르지 않아서 지역에 따라 편차가 심한데, 추운 겨울에 폭설이 자주 내리는 북부 산악 지대는 연간 2,540mm 이상이며, 중앙 계곡의 적설량은 630mm 이하이다.
행정 구역

알바니아 행정구역

알바니아는 티라나 주, 두러스 주를 포함한 12개의 주로 구분되며, 이 12개의 주는 티라나 현, 두러스 현 등 36개의 현으로 세분화된다. 수도이자 제1의 도시인 티라나는 면적이 41.8㎢로서 인구는 약 42만 1,286 명(2011년)이다.
주민

2011년 조사에 따르면 알바니아의 총인구는 282만 1,977 명이다. 이 중 알바니아인이 97%로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남부에 그리스인이 6만여 명(인구의 2.1%) 거주하며, 그 밖에 마케도니아인, 몬테네그로인, 세르비아인, 불가리아인, 아로마니아인, 터키인, 롬족 등 기타 민족들도 거주한다.
언어

공용어는 알바니아어이다. 알바니아어를 모어(母語)로 사용하는 주민이 전체 인구의 98.77%를 차지해 압도적이다. 남부에는 그리스어를 모어로 쓰는 소수의 주민들(인구의 1.17%)이 있다. 소수의 언어들 중에 아로마니아어, 세르비아어화자도 일부 존재하고 있다. 주요 외국어는 이탈리아어, 그리스어, 영어이다.
종교

알바니아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코소보와 더불어 유럽에서 국민 다수가 이슬람교를 믿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이다. 한때 알바니아는 공산화 이후 사회주의 국가 수립을 위한 계획의 일환으로서 1967년 무(無)종교 국가를 선언하여 모든 모스크와 교회를 파괴하거나 박물관 등의 다른 용도로 사용해왔다. 그러나 1991년 민주화 이후 다시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었다.

2011년 알바니아의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약 56.70%가 수니파 무슬림이며, 2.09%는 이슬람교에서 변형된 신앙인 벡타쉬교에 속한다. 알바니아의 기독교의 교파는 로마 가톨릭교회가 약 10.03%, 알바니아 정교회가 약 6.75%를 차지한다. 알바니아 정부는 2011년부터 개신교를 공식적인 종교로 인정하였다. 또한 13.79%는 특정 종교를 믿지 않으며(무응답/무종교), 2.5%는 확고한 무신론자들이다. 5.49%는 기타 종교라고 대답하였다.

이슬람교는 전국적으로 분포하지만, 로마 가톨릭교는 주로 북부지방에, 알바니아 정교회는 그리스와 인접한 남부 지방에 주로 분포한다. 2007-2008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약 63%의 알바니아인들이 자신의 삶에서 종교가 중요하지 않다고 대답하여 이슬람 국가 중에서는 상당히 세속화된 나라이다.
경제

과거 사회주의 계획 경제 국가였던 알바니아는 민주화 이후에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도입하였으나 1997년 금융 피라미드 사건으로 인해 내전에 휘말리기도 했다. 현재 알바니아의 경제 규모는 약 134억 달러(2011년) 규모로서 세계 115위이다. 2008년 조사 당시 알바니아의 산업구조는 20.6%가 농업 등 1차산업이며, 19.9%가 제조업 등의 2차 산업이며, 59.5%가 서비스업 등 3차 산업이다. 하지만, 2006년 조사에 따르면 노동력에 있어서는 약 58%가 농업에 종사하고, 약 15%가 제조업, 27%가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다. 알바니아의 실업률은 13.3%(2010년) 정도이다. 전체인구의 12.4%(2008)가 빈곤층에 속한다.

알바니아의 수출량은 약 18억 8,600만 달러(2011)이며, 주요 수출품은 직물, 신발, 아스팔트, 크롬 등 금속과 채소, 과일, 담배 등이다. 주요 수출거래국으로는 이탈리아, 그리스, 오스트리아, 중국이 있다. 알바니아의 수입량은 약 50억 2,200만 달러(2011)이며, 주요 수입품은 기계 장비나 화학 제품과 식료품, 직물 등이다. 주요 수입거래국은 이탈리아, 그리스, 터키, 독일, 중국이다.

알바니아의 전력생산 규모는 약 52억 100만 킬로와트 시이며, 이는 세계 113위 규모이다. 알바니아의 전력 대부분은 댐에 의한 수력 발전에 의해 생산된다. 또한 알바니아에서는 소량으로 석유와 천연가스가 생산되며 대부분이 국내에서 소비되게 된다.
대외 관계

공산정권 시절에는 다른 공산권 국가처럼 소련,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지만, 스탈린 사후 소련과, 마오쩌뚱 사후 중국과 차례로 갈등을 빚으면서 외교관계가 끊어졌고, 1990년까지는 서방 국가와의 관계도 거의 없는 매우 고립된 국가였다. 그러나, 1991년 민주화 이후 대외개방에 나서서 현재는 미국, 유럽 연합과 가깝게 지내고 있다. 2009년에 유럽 연합 가입을 신청했다.
대한민국과의 관계

1948년 11월 2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수교하였고, 1988년에는 당시 유럽 공산주의 국가로서는 유일하게 서울 올림픽에 불참했다. 그러나, 1991년 8월에 대한민국과 수교하였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1992년 10월에 알바니아 주재 대사관을 폐쇄하였다.

1995년 5월에 대한민국과 과학기술협력협정을 체결하고, 1998년 11월에는 알바니아 외무장관이 대한민국을 방문하였으며, 2001년 2월에는 국회의장이 대한민국을 비공식 방문했다. 주 그리스 대한민국 대사관이 알바니아 대사관을 겸임하고 있다.
러시아와의 관계

공산정권 시절 초기에는 소련과 매우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스탈린 사후에 양국 관계가 악화되면서 바르샤바 조약기구에서 탈퇴했다. 1990년대에 외교관계가 회복되었지만, 러시아보다는 서방 국가와 더 가깝게 지내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

중국과는 소련과의 관계가 단절되면서 가까워졌으나, 마오쩌둥 사후에 양국 관계가 악화되어 외교관계도 끊어졌다. 1990년대에 관계가 회복되면서 현재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

미국과는 1990년대 초부터 우호적인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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